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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다

by 변교수 202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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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차례의 세계대전

1.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다

1차 세계 대전의 배경

19세기 후반 식민지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자 제국주의 국가들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맹을 맺었다. 독일은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해 오스트리아ᆞ헝가리 제국,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맺었다(1882). 이에 맞서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3국 협상을 맺고(1907) 독일의 팽창을 견제하였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프랑스가 모로코를 지배하려고 하자 독일이 반발하면서 프랑스와 독일은 두 차례 충돌 위기를 겪었다(모로코 사건, 1905, 1911).

한편, 발칸반도에서도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쇠퇴로 발칸반도의 여러 민족이 독립하자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를, 독일과 오스트리아ᆞ헝가리 제국은 범게르만주의를 내세우며 발칸반도에서 세력을 확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스트리아ᆞ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하자 세르비아가 발칸 동맹을 맺고 이에 맞서면서 발칸 전쟁이 일어났다.

 

1차 세계 대전의 전개와 결과

발칸반도에서 대립과 충돌이 심화되는 가운데, 1914년 보스니아를 방문한 오스트리아ᆞ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사라예보 사건). 이에 오스트리아ᆞ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자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지지하였고, 독일은 오스트리아ᆞ헝가리 제국 편에 가담하였다. 결국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확대되었다.

독일은 서부 전선에서 빠르게 진격하였으나 마른 전투에서 프랑스에 패배하였다. 이후 서부 전선에서의 전쟁은 참호전의 양상으로 장기화되었다. 동부 전선에서는 독일이 러시아를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그러던 중 러시아는 국내에서 혁명이 발생하자 독일과 단독 강화 조약을 맺고 전선에서 이탈하였다.

한편, 영국은 해상을 봉쇄하여 독일로 들어가는 물자를 통제하였다. 그러자 독일은 협상국을 오가는 중립국 선박까지 공격하는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협상국으로 참전하면서 협상국은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였다. 이후 독일의 동맹국들이 차례로 협상국에 항복하여 전세가 불리해진 가운데 킬 군항에서 독일 해군들이 일으킨 반란을 계기로 독일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이 혁명으로 들어선 독일 임시 정부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제1차 세계 대전이 끝이 났다(1918).

1차 세계 대전은 국가의 모든 인력과 물자가 총동원되는 총력전으로 전개되었고, 기관총, 전차, 독가스 등 다양한 신무기들이 투입되어 엄청난 물적 손실과 인적 손실을 낳았다. 그 결과 승전국과 패전국을 막론하고 유럽 각국의 세력이 약화된 반면,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성립

19세기 후반 러시아에서는 국가 주도로 산업화가 추진되면서 노동자가 늘어났고, 지식인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퍼져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하자 총파업이 시작되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니콜라이 2세는 헌법 제정, 두마(국회) 설치 등을 약속하였으나, 전제 정치는 계속되었다.

이후 러시아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1917년 노동자들이 식량 배급, 전쟁 중지, 전제 정치 타도를 요구하며 파업과 시위를 전개하자, 군인들도 이에 동참하였다. 노동자와 군인은 소비에트를 조직하여 제정을 무너뜨리고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다(3월 혁명, 러시아력 2). 그러나 임시 정부가 개혁을 미루고 전쟁을 지속하자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임시 정부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 정부를 세웠다(11월 혁명, 러시아력 10).

혁명 이후 레닌은 의회를 해산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를 선언하였다. 또한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어 전쟁을 중단하고 토지와 산업을 국유화하는 사회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반혁명 세력과의 내전으로 경제난에 처하자, 레닌은 시장 경제 요소를 일부 도입한 신경제 정책(NEP)을 실시하였다. 곧이어 레닌은 반혁명 세력을 진압하여 정권을 안정시키고 주변국을 흡수하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을 수립하였다(1922). 한편, 레닌은 국제 공산당 조직인 코민테른을 조직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일어난 노동 운동과 식민지 해방 운동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사회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은 191833일에 맺어진 평화조약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권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 등 동맹국 사이의 조약이다. 이 조약은 러시아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탈퇴하고 동부전선이 종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약은 폴란드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체결되었으며,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알려졌다. 볼셰비키 정권은 독일과 오스트리아군의 진격을 막을 수 없어 이 조약을 받아들여야만 했으며, 조약으로 인해 소비에트 러시아는 이전의 삼국 협상에 대한 불이행으로 비난을 받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이 유산을 남기다

전쟁의 영향

전쟁의 새로운 양상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양 진영은 적의 포격과 총탄을 피하기 위해 수천 킬로미터의 참호를 구축하였다. 참호전으로 전쟁이 장기화되자 참전국은 자국과 식민지의 인력과 물자를 총동원하였다. 또한 과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다양한 신무기가 등장하여 유례없는 대량 살상이 초래되었다.

 

다다이즘의 등장

1차 세계 대전으로 서구 문명에 회의를 느낀 일부 예술가들이 다다이즘이라는 허무주의적 예술 운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기존의 미술 이론에서 벗어나 반문명, 비합리성, 비심미성을 추구하는 예술 운동을 전개하였다.

 

반전 운동의 전개

전쟁을 전후하여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아일랜드, 러시아 등 세계 각 지역에서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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