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창] 2. 국민 의식과 민권 의식이 확산되다

2. 국민 의식과 민권 의식이 확산되다

개항 이후 외국 공사관이 설립되고 세계 각국과의 교섭이 늘면서 외국어 학습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1908년 지석영 등은 조선 후기의 정약용이 만든 아동용 한자 학습서인 『아학편』에 영어 단어의 철자를 적고 한글로 발음을 표기한 책을 간행하였다. 이 책에서는 영어 외에 일본어, 중국어도 함께 덧붙여 3개국의 단어를 익힐 수 있도록 하였다.

 

근대적 교육 기관의 설립

개항 이후 부국강병을 위해 서양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확산하면서 근대 학교가 세워졌다. 정부는 1880년대 영어 교육 기관인 동문학과 서양의 학문을 교육하는 육영 공원을 설립하여 현직 관리와 양반 자제들을 가르쳤다. 함경도 덕원에서는 개화파 관료와 주민들이 원산 학사를 세워 외국어와 법률, 만국 공법, 지리 등의 근대 학문을 가르쳤다. 개신교 선교사들도 이화 학당, 배재 학당, 정신 학교 등을 설립하여 근대 교육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정부가 과거제를 폐지하고 교육입국 조서를 반포하면서 소학교, 한성 중학교, 한성 사범학교 및 외국어 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이들 학교에서는 대체로 수신(도덕), 국문, 역사, 지리, 산수 등을 기본 교과목으로 가르치고 학교의 성격에 따라 전문 교과목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또한, 전문직 양성을 위해 정부는 법관 양성소, 무관 학교, 상공 학교 등을 세웠다. 전 현직 관료들도 흥화 학교, 광흥 학교, 법률 학교 등의 사립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을사늑약을 전후하여 애국 계몽 운동가들이 수많은 사립 학교를 설립하였고, 이곳에서는 한국어와 한국사 교육을 중심으로 작문, 음악, 체육 등을 가르쳤다. 그러자 통감부는 정부에 1908년 사립 학교령을 공포하게 하여 사립 학교 설립을 제한하였다. 통감부는 일본인 교사를 배치하여 일본어를 보급하려 하였고, 교과서 검정 제도를 도입하여 민족주의적 성격을 지닌 교과서를 배제하고자 하였다.

 

◼ 교육입국 敎 가르치다 育 기르다 立 세우다 國 나라

교육을 통해 나라를 튼튼하게 세운다는 의미로, 고종은 국가의 부강함이 국민의 교육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교육입국 조서

고종의 교육입국 조서 반포 이후 정부는 학부 관제, 한성 사범학교 관제, 소학교 관제, 외국어 학교 관제 등을 발표하여 근대적 학교를 설립하였다.

세상 형편을 돌아보건대 부유하고 강하여 우뚝 독립한 나라들은 모두 그 나라 백성의 지식이 개명한데 지식이 개명함은 교육이 잘 되었기 때문인즉 교육이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다. ...... 짐이 정부에 지시하여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너희 신하와 백성이 학식으로 나라를 일어나게 하는 큰 공로를 이룩하기 위함이라. - 『고종실록』, 1895.2.2.

 

언론 기관의 발달

신문은 근대적 민권 의식과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였다. 1883년 박문국에서는 순 한문체로 한성순보를 발행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는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단되었다가 한성주보로 다시 발간되었다. 두 신문은 국제 정세와 서구 제도, 문물, 역사 등을 소개하였다. 1896년에는 서재필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 독립신문은 고위 관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고 국민의 권리와 의무, 국제 정세, 열강의 이권 침탈 상황 등을 전하였다. 순 한글을 사용하여 독자를 늘렸으며 한글이 일상적인 문자로 자리 잡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신문은 영문판으로도 발행되어 국내 사정을 외국인에게 알렸다. 1898년에 창간된 제국신문은 하층민과 부녀자를 주된 독자층으로 삼아 순 한글로 간행하였고, 법률 지식과 풍속 개량으로 국민을 계몽하고자 하였다. 황성신문은 국한문 혼용체로 발행되었으며, 지식인을 대상으로 외국의 독립과 망국의 역사, 고대사 기사를 다루어 민족의식을 높이려 하였다. 양기탁이 중심이 된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에 창간하였다.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내세워 일제의 국권 침탈과 친일 정권의 부패 무능을 비판하고 항일 의병 투쟁을 호의적으로 보도하였다. 순 한글, 국한문, 영문 세 종류로 발행하였다.

통감부는 정부에 1907년 신문지법을 공포하게 하여 한국인이 발행하는 신문을 탄압하였으나 많은 신문사가 일제의 국권 침탈을 비판하는 언론 활동을 펼쳤다.

 

민권과 여권의 성장

갑오개혁 때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의 개혁 요구들이 일부 수용되어 법제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고, 과거제와 조혼 등이 폐지되었다. 이로 인하여 서얼, 중인, 천민 출신이 고위 관료가 되기도 하였다. 재판 제도가 개혁되면서 법관이 아니면 죄인을 체포하고 심문하지 못한다는 인식도 확대되었다. 특히 독립 협회가 전개한 민권 운동의 영향으로 백성이 정부 고관을 고소 고발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민권 의식이 높아졌다. 이 무렵 여성들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1898년 한성의 부인들은 「여권통문」을 발표하여 여학교 설립을 주장하였다. 1905년부터는 여성들이 여자 교육회, 진명 부인회 등의 단체와 양규 의숙, 진명 여학교 등의 설립을 후원하였다. 외국 유학을 다녀온 여성이나 개신교 여성들은 교사, 개신교 전도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박에스더는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고, 윤희순은 의병에 참여한 시아버지를 도와 의병 투쟁을 지원하였다.

 

◼ 여권통문

어려서부터 각각 학교에 다니며 각종 학문을 다 배워 이목을 넓혀 장성한 후에 사나이와 부부 관계를 맺어 평생을 살더라도 그 사나이에게 조금도 압제 받지 않고 후대를 받음은 다름 아니라 그 학문과 지식이 사나이에 못지않은 고로 권리도 동일하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 통문 발기인 이소사 김소사, 1898.9. 1.6

 

◼ 박에스더

한국 최초의 여의사이다. 미국에서 의학을 전공한 뒤 귀국하여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인 보구여관에서 환자들을 진료하였다.

 

국민 의식 고취를 위한 국학 발달

열강의 침략이 거세지자 국어와 한국사 연구를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국문 사용이 점차 늘면서 문자 체계와 철자법 등을 통일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에 정부는 국문 연구소를 세워 우리말과 우리글을 연구 정리하였다. 유길준은 『대한문전』, 주시경은 『국어문법』 등을 간행하여 한국어 사용법을 통일하여 나갔다.

갑오개혁 이후 정부는 애국심과 자주독립 의식을 확산하기 위해 『조선 역사』와 같은 교과서를 편찬하였다. 을사늑약 이후 박은식은 고구려를 높이 평가하는 『동명왕실기』, 『천개소문전』 등을 남겼다. 신채호는 역사가 애국심의 원천이라 하면서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 『을지문덕전』 등을 지었고, 『독사신론』을 저술해 민족주의 역사 서술의 기본 틀을 제시하였다.

 

◼ 독사신론

1908년 신채호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한 글이다. 민족을 역사 전개의 주체로 강조하였으며, 식민 사관의 영향을 받아 편찬된 일부 국사 교과서를 비판하였다.

 

국어와 한국사 연구

◼ 주시경의 주장

전국 인민의 사상을 돌리며 지식을 넓혀 주려면 국문으로 학문을 저술 번역하여 남녀를 물론 하고 다 쉽게 알도록 가르쳐 주어야 될지라.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은 한문을 구경도 못 하였지만 저렇듯 부강함을 보라. ...... 더 좋고 더 편리한 말과 글이 되게 할 뿐 아니라, 온 나라 사람이 다 국어와 국문을 우리나라 근본의 주장 글로 숭상하고 사랑하여 쓰기를 바라노라. - 『서우』 제2호, 1907.1.

 

◼ 신채호의 주장

국가의 역사는 민족의 소장성쇠(消長盛衰)를 서술해야 한다.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고,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국가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다. ...... 역사를 집필하는 자는 반드시 그 국가의 주인 종족을 골라 이를 주제로 삼은 후 그 정치 실업 무공 습속 외교 등을 서술해야 역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 빠진 역사라. 정신 빠진 역사는 ...... 정신 빠진 국가를 만들 것이니. - 『독사신론』, 190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