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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수ᆞ당이 세계 제국으로 발전하다

by 변교수 202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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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ᆞ당이 세계 제국으로 발전하다

수의 중국 통일

북주의 외척인 양견(문제)은 수를 세우고(581), 남조의 진을 멸망시켜 약 400년 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다(589). 수 문제는 율령을 반포하고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황제권을 강화하였다. 그는 기존에 시행되던 균전제, 조용조, 부병제를 정비하여 국가 재정을 안정시켰으며, 9품중정제를 폐지하고 과거제를 시행하여 문벌 귀족 세력을 약화시켰다.

문제에 이어 즉위한 양제는 화북과 강남 지방을 연결하는 대운하를 완성하여 남북 간 물자 유통과 경제 통합을 강화하였다. 양제는 대외 진출을 추진하여 돌궐과 고구려를 공격하였는데, 대규모 군사를 동원한 고구려 원정은 실패하였다. 이러한 수의 무리한 대외 원정과 대규모 토목 공사는 농민들의 원성을 샀고, 결국 수는 각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으로 멸망하였다(618).

 

당의 세계 제국 건설

수의 지방관이었던 이연(고조)은 장안을 수도로 삼아 중국을 통일하고 당을 세웠다(618). 2대 황제 태종은 율령 체제를 정비하였고 대외적으로는 동돌궐을 복속시켰다. 뒤를 이어 고종은 서돌궐을 멸망시켰으며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베트남까지 복속시켰다. 영토를 확장한 태종과 고종은 기미 정책으로 정복지를 다스렸다. 이후 현종은 절도사를 두어 국경을 안정시키고 각종 제도를 정비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은 크게 번영하여 당의 수도 장안은 인구 백만에 이르는 국제도시로 성장하였다.

당은 율령 체제를 정비하여 중앙에 36부를 두고 지방에 주, 현을 편성하였다. 백성에게는 균전제로 토지를 분배하고 조용조와 부병제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국가 재정을 확보하고 군사력을 키웠다. 이러한 율령 체제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전파되어 각 나라의 고대 국가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8세기 중반 당에서는 절도사 안녹산과 그의 부하 사사명이 반란을 일으켰다(안사의 난). 이를 계기로 절도사들이 독자적 세력을 강화하고 환관의 횡포가 심해져 당 정부의 권위가 크게 떨어졌다. 또한 귀족의 장원 소유가 늘어나면서 균전제가 무너졌다. 이에 따라 조용조와 부병제는 각각 양세법과 모병제로 바뀌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농민 반란인 황소의 난이 일어나 당은 급격히 쇠퇴하였고, 결국 절도사 주전충에게 멸망하였다(907).

 

수ᆞ당의 사회와 문화

수ᆞ당에서는 지배층을 형성한 문벌 귀족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과거제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당의 귀족은 과거와 음서를 통해 관직을 독점하고 여러 가지 특권을 누렸다.

당 대에는 화북 지방에서도 23작이 가능해져 농업 생산력이 크게 늘었다. 상업도 발달하여 일종의 약속 어음인 비전이 사용되었고, 상인 조합인 행()도 결성되었다. 중앙아시아를 장악하여 교통로를 확보한 당은 국제 무역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 결과 수도 장안은 다양한 문물이 들어오는 중심지가 되어 이곳에 여러 나라의 사신, 유학생, 유학승이 모여들었다.

당에서는 사회와 경제 발전을 기반으로 귀족적이고 국제적인 문화가 발달하였다. 과거에서 유학 경전의 내용을 묻거나 시를 짓도록 하여 유학과 문학이 발달하였다. 당시 공영달은 한 대 이래의 훈고학을 집대성하여 경전의 주석인 오경정의를 편찬하였다. 이 책은 과거의 기준이 되었으나 경전의 획일적 해석으로 유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문학에서는 시가 귀족의 취향에 맞아 발달하였는데, 이백, 두보 등의 시인이 배출되었다. 글씨에서는 구양순과 안진경이 명필로 이름을 떨쳤다. 공예는 화려하고 이국적 특색을 지닌 당삼채가 유행하였다.

당 대에 불교는 더욱 발전하였는데, 현장과 의정 등의 승려들이 인도를 순례하고 불교 경전을 들여오기도 하였다. 도교도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융성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 경교(네스토리우스교) 등 다양한 종교가 전래되어 장안에 여러 종교의 사원들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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