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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절대 왕정이 성립하다

by 변교수 2023.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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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절대 왕정이 성립하다

절대 왕정의 성립

16~18세기 유럽에서는 중앙 집권적 통일 국가가 등장하면서 국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정치 체제를 절대 왕정이라고 한다. 절대 군주들은 왕의 권력이 신에게서 내려왔다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강력한 국가 통치를 위해 관료제와 상비군을 두었는데, 이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조세 제도를 정비하였다. 또한 수출을 장려하고 관세를 높여 수입을 억제하는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와 함께 해외 팽창과 식민지 건설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국가의 경제력을 증대하려 하였다.

절대 군주는 상공업에 종사하는 시민 계층을 보호해 주고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지와 재정 지원을 받았다. 이로써 시민 계층은 더욱 성장하였다. 반면, 전투 방식이 변화하고 상비군이 등장하면서 봉건 귀족의 군사적 역할은 축소되었다. 귀족들은 세력이 점차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적ᆞ경제적 특권을 누렸다.

 

절대 왕정과 유럽의 전쟁

군사와 무기의 변화

16세기 유럽에서는 중국에서 들어온 화약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리하여 전쟁에서 주요 군사는 중무장한 봉건 기사가 아닌 화약 무기로 무장한 직업 보병대인 상비군으로 바뀌었다. 화약 무기로는 대포가 사용되다가 점차 손에 들 수 있는 화승총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화승총은 장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격한 병사가 다시 장전하는 사이에 뒷 열의 병사가 전진해서 사격을 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네덜란드 군대는 이러한 방식을 도입하여 에스파냐 군대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요새의 변화

화약 무기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성과 요새에도 변화가 생겼다. 화약 무기의 공격을 막기 위해 흙벽을 비스듬하게 다져 보루를 세웠고, 다른 보루에서 적군을 공격할 수 있도록 보루를 각진 형태로 만들었다. 또한 적군이 침입하기에 어렵도록 성 주위에 연못을 팠다. 이러한 요새는 보루의 개수만큼 꼭짓점을 가진 별 모양을 이루게 되어 별 모양 요새라고 불렸다. 유럽 여러 나라의 군주들은 화기 확보, 상비군의 고용과 유지, 대규모 요새 건축 등을 위해 권력을 중앙 집중화하고 세금을 더 많이 거두었다. 그 결과 늘어난 행정 처리와 재정 관리에 필요한 관료제도 더욱 강화하였다. 효율적인 세금 징수 체제와 전문적인 군사력, 강력한 중앙 집권적 행정 기구는 유럽 근대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서유럽의 절대 왕정

16세기 서유럽에서는 에스파냐가 가장 먼저 절대 왕정을 이루었다.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는 대서양 무역의 주도권을 잡고 아메리카에서 유입된 귀금속을 바탕으로 신대륙과 지중해, 네덜란드 등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또한 무적함대를 이끈 펠리페 2세는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여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에스파냐는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배하고, 극단적인 가톨릭 강요 정책에 반발한 네덜란드 북부 7주가 독립하면서 국력이 쇠퇴하였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동인도 회사를 세워 아시아로 진출하였다. 그는 1차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나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오자 빈민 구제에 나서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셰익스피어 같은 유명한 작가가 등장하는 등 문화도 크게 발달하였다.

프랑스의 앙리 4세는 부르봉 왕조를 개창하면서 낭트 칙령을 발표하여 종교 전쟁을 수습하고 절대 왕정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루이 14세가 프랑스 절대 왕정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을 철저히 신봉하였다. 또한 콜베르를 재무 장관으로 등용하고 중상주의 정책을 펼쳐 국가 재정을 확보하고 상비군을 육성하였다. 그는 태양왕을 자처하였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왕실의 권위를 과시하고 궁정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프랑스는 낭트 칙령의 폐기로 많은 위그노 상공업자들이 프랑스를 떠나 국내 산업이 침체되었고, 무리한 전쟁으로 재정난이 심화되었다.

 

동유럽의 절대 왕정

엘베강 동쪽에 위치한 동유럽은 서유럽에 비해 도시와 상공업의 발달이 늦어 시민 계급의 성장이 더뎠다. 그리하여 봉건 귀족 계급은 농노제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관료나 군대 지휘관으로 국가 기구에 참여하면서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동유럽 군주들은 위로부터의 개혁을 실시하였다.

30년 전쟁 이후 정치적으로 분열된 독일 지역에서는 전쟁의 피해가 비교적 적었던 프로이센이 강대국으로 등장하였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여 슐레지엔 지방을 차지하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또한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국가 제일의 심부름꾼을 자처하였으며, 산업을 장려하고 종교적 관용 정책을 펼쳤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뒤를 이은 요제프 2세가 계몽 전제 군주를 자처하며 내정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개혁은 보수적인 귀족들의 반발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러시아는 17세기 말 표트르 대제 시기에 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표트르 대제는 네덜란드와 영국 등의 선진 문화와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내정을 개혁하였다. 또 스웨덴과 북방 전쟁을 벌여 발트해로 진출하였고, 서유럽 문물 수용이 쉬운 곳에 위치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수도로 삼았다. 그는 시베리아 경영에도 힘써 청과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고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18세기 말에는 예카테리나 2세가 계몽 전제 군주를 자처하며 내정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와 함께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는 등 영토를 확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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