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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한국사의 창] 8-2. 분단된 민족,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다

by 변교수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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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분단된 민족,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다

2018우리는 하나라는 주제로 남과 북의 평화와 협력을 기원하는 무대가 평양에서 펼쳐졌다. 무대 정면의 대형 화면 양 옆과 관람석 뒷벽은 남북 화합을 상징하는 커다란 한반도기로 장식되었다. 공연은 남과 북의 가수들이 손을 잡고 함께 부른 통일 노래로 마무리되었다.

분단된 민족,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다

 

남북의 갈등

광복 이후 서로 다른 체제의 대한민국 정부와 북한 정권은 6·25 전쟁 이후 적대적 관계가 지속되었다. 정전 협정에 따라 1954년 한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제네바 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성과 없이 끝나고, 남과 북의 지도자들은 북진 통일과 외세 배격을 주장하며 날카롭게 대립하였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무너지자 대학생과 진보 세력을 중심으로 통일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장면 정부는 민간에서 활발히 벌어진 통일 논의에 선 민주, 후 통일을 내세우며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5·16 군사 정변으로 들어선 박정희 정부는 강력한 반공 정책을 폈고, ‘선 건설, 후 통일을 내세우며 경제 발전에 주력하였다. 이 무렵 북한에서는 남조선 혁명론을 주장하는 한편, 울진 삼척의 무장간첩 침투 사건 등을 일으키면서 남북 간의 갈등은 더욱 커졌다.

 

남북 관계의 개선

1969년 닉슨 독트린 발표 이후 냉전이 완화되고 국제적으로도 평화와 공존의 분위기가 고조되자 남과 북의 관계도 개선되었다. 1971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 회담을 시작으로 대화의 통로를 연 남과 북은 1972년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통일 원칙을 담은 7·4 남북 공동 성명1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남북 조절 위원회가 설치되어 통일을 위한 실무자 회담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남한의 인구 비례에 의한 총선거 주장과 북한의 남북 연방제 통일 주장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북한의 대화 중단 선언으로 남북 간의 대화는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이후 남북한에서는 각각 유신 헌법과 사회주의 헌법을 공포하며 7·4 남북 공동 성명을 독재 체제 강화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전두환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에 노력하여 민족 화합 민주 통일 방안을 제시하였다(1982). 1984년에는 서울에 수해가 발생하자 북한이 원조 물자를 보내왔으며, 이후 남북 경제 회담, 적십자 회담 등이 성사되며 1985년 이산가족 상봉과 예술 공연단 교환 방문이 이루어졌다.

 

남북 관계의 변화

19876월 민주 항쟁을 계기로 민간 차원의 통일 운동이 활발해졌다. 노태우 정부는 공산권 국가와 수교하는 북방 외교를 추진하였고, 북한에도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북한도 외교적 고립을 피하고자 남한과의 교류에 나섰다. 그 결과 1990년부터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여러 차례 개최되었고, 1991년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또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다. 남북 기본 합의서는 남북한 정부 간에 최초의 공식 합의서로,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불가침에 합의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국제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1993년 북한이 핵 확산 금지 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남북 관계가 악화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1994년 화해와 협력, 남북 연합, 통일 국가 완성으로 이어지는 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 방안을 제시하였다.

 

남북 교류의 진전

김대중 정부는 한반도 평화 정책과 남북 교류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인 햇볕 정책을 추진하였다. 현대 그룹 회장 정주영이 소 떼를 이끌고 방북한 것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제 협력이 본격화되었으며, 2000년에는 평양에서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이 개최되었다. 정상 회담의 결과 발표된 6·15 남북 공동 선언에 따라 이산가족 방문이 이루어졌고, 경의선 철도 복구, 개성 공단 건설 등의 경제 협력과 사회 문화 교류도 전개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평양에서 개최된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에서 6·15 남북 공동 선언의 이행 방안이 담긴 10·4 남북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 실험 강행에 따라 남북 관계는 다시 경색되었다. 더구나 서해 교전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 북한의 무력 도발로 인해 남북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 사이에 다시 화해와 협력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한 결과 남북 두 정상은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고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남북 공동 연락 사무소 개성 설치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였다.

 

남북한의 사회 문화 교류

1985년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이루어진 예술 공연단의 교환 방문을 시작으로 사회 문화 분야의 남북 교류도 활성화되었다. 특히 역사, 언어, 체육, 환경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가 추진되었다.

 

역사

남한과 북한의 역사학자들은 2004년 평양에서 일제 약탈 문화재 반환 공동 학술 토론회를 개최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 역사학자 협의회를 구성하였다. 남북 역사학자 협의회는 평양 일대의 고구려 고분군에 대해 공동 조사를 실시하고, 개성 고려 궁성(만월대) 발굴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2015년에 서울과 개성에서 공동 전시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해 약 2년에 걸쳐 뤼순의 공동묘지를 함께 조사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개성 고려 궁성(만월대) 공동 발굴 조사 사업(2007)

 

체육

체육 분야에서는 꾸준히 교류가 이루어졌다. 1990년 남북통일 축구 대회가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열렸으며, 1991년에는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와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에 남북 단일팀이 참가하였다. 이후 다수의 국제 대회에서 남북한이 공동 입장하였으며, 남한과 북한의 유소년 축구 선수들은 2014년부터 국제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는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30여 년 만에 남북 단일팀으로 구성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역도, 태권도 등 남한과 북한에서 열리는 체육 대회에 선수단을 파견하며 교류를 이어 오고 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남북 단일팀 입장(2018)

 

언어

분단 기간이 길어지면서 달라진 남북한 언어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이루어졌다. 2005겨레말 큰사전 공동 편찬 위원회가 설립되어 남북 공동 편찬 회의를 개최하고 겨레말 큰사전에 수록할 표제어 선정과 표기법 정리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남북 공동 편찬 과정에서 구축한 자료를 활용하여 겨레말 웹 사전검색 엔진을 개발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겨레말 큰사전 공동 편찬 위원회 회의 개최(2015)

 

환경

오늘날 중요한 문제인 환경 분야에서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의 환경 문제는 경제난을 겪으며 더욱 악화되었다. 특히 1990년 이후 북한은 매년 평양 면적만큼의 산림이 훼손되고 있어 산림 분야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시민 단체인 겨레의 숲에서는 북한에 묘목 종자 지원, 병충해 방제 사업 등을 추진해 오고 있으며, 분단의 상징이었던 비무장 지대를 생태 평화 협력의 공간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한눈에 보는 남북 관계

7·4 남북 공동 성명(1972)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따르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남북 기본 합의서(1991)

1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4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15조 남과 북은 민족 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 전체의 복리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원 공동 개발, 민족 내부 교류로서의 물자 교류 등 경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6·15 남북 공동 선언(2000)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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