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독립 협회가 설립되고 대한 제국이 수립되다.

by 변교수 2023. 5. 22.
반응형

3. 독립 협회가 설립되고 대한 제국이 수립되다.

고종은 대한 제국을 선포하면서 청의 예속국으로서의 조선 국왕이 아닌 황제를 나타내는 국새 10과를 새로 만들었다. 그중 하나인 황제지보는 손잡이()의 형태를 이전의 거북이 모양에서 황제를 상징하는 용 모양으로 바꾸어 만들었다. 대한 제국의 국새는 6·25 전쟁 때 일부가 국외에 불법 반출되었다가 2014년에 환수되었다.

 

독립 협회의 설립

갑신정변 이후 미국에 망명 중이던 서재필은 정부의 요청으로 귀국하였다. 그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1896년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개화파 관료들과 독립 협회를 설립하였다. 독립 협회는 독립문 건립을 추진하여 독립문을 세우는 데 보조금을 내면 누구나 독립 협회의 회원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독립 협회는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관에서 교육과 산업 진흥, 자주독립 등의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민중을 계몽하였다. 또한, 갑오개혁 때 정해진 국기의 게양을 주장하고, 애국가를 제정하여 보급하려 하였다.

 

대한 제국의 수립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은 단발령을 철회하고 의병의 해산을 권유하였다. 이어 친러 친미 성향의 인물로 정부를 구성한 후 내각을 폐지하고 의정부를 설치하되 국왕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도록 하였다. 지방 행정 구역도 23부에서 13도로 바꾸었다.

고종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일본의 위협에서 벗어나려 하였으나 러시아는 겨우 군사 교관의 파견 요청에만 응하였다. 러시아와 일본은 조선을 둘러싸고 두 차례의 비밀 협정을 체결하여 조선을 두 나라의 공동 세력권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상소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고종은 친위대의 경비 능력이 갖추어진 후인 18972월에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왔다. 이후 조선도 황제 칭호를 사용하여 국가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고종은 연호를 광무로 바꾸고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한 뒤 나라 이름을 대한 제국으로 선포하였다.

 

독립 협회의 국권 수호와 개혁 운동

대한 제국이 수립될 무렵 러시아는 정부와 교섭하여 재정 고문을 파견하고, 한러 은행 설립, 절영도 조차 등 이권 침탈을 시도하였다. 독립 협회는 이를 국가 주권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 18983월부터 종로에서 상인, 학생 등 1만여 명이 참여한 만민 공동회를 열었다. 만민 공동회에서는 러시아의 간섭과 이권 요구를 규탄하는 자주 국권 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국, 러시아는 재정 고문을 철수시키고, 절영도조차 요구를 철회하였다.

1898년 중반 이후 독립 협회는 신체의 자유, 재산권 보호,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을 펼치는 한편, 정부 대신의 부정부패 등을 비판하면서 황제 권력을 제한하고자 하였다. 황제 측근인 이용익5에게는 백동화를 남발한 죄를 물어 고등 재판소에 고발하였다. 또한, 정부가 갑오개혁 때 폐지된 연좌제 등을 부활하려 하자 만민 공동회를 열어 연일 반대 시위를 주도하였다.

 

독립 협회의 중추원 개편

독립 협회는 갑오 개혁기에 설립되었던 중추원을 서유럽의 상원 의회와 같은 기구로 개편하여 입헌 군주정 체제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독립 협회는 1898년 종로에서 정부 대신들까지 참석한 관민 공동회를 열고 여기에서 제기된 국정 개혁안인 헌의 6조를 황제에게 올렸다. 황제가 이를 수락하면서 중추원 제도가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중추원은 입법권, 정부 안건 심사권, 정부 정책 자문권 등을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국정 중요 사항에 대해서는 중추원이 합당하다고 결정하기 전까지 행정부가 단독으로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중추원 의관 50명 중 절반은 정부가 황제에게 추천하여 임명하고 나머지는 독립 협회에서 선출하도록 하여 국민의 의사가 정치

 

대한 제국의 독립 협회 해산

중추원 제도가 개편되자, 독립 협회의 세력이 커질 것을 걱정한 보수 관료들은 독립 협회가 황제를 폐위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려 한다고 모함하였다. 고종은 독립 협회를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독립 협회의 간부를 체포하였다. 이에 학생과 상인 등 수천 명이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서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고 독립 협회 간부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에 놀란 고종은 독립 협회의 간부들을 석방하였으나 만민 공동회는 헌의 6조의 실시, 독립 협회의 재설립을 계속해서 요구하였다.

시위가 계속되자 정부는 황국 협회를 통해 전국의 보부상을 한성으로 불러들여 만민 공동회를 습격하였다.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 부상자가 생겼다. 고종은 독립 협회와 황국 협회의 대표를 만나 그들의 요구를 들은 뒤 독립 협회를 다시 설립하고 보부상을 해산시킬 것을 약속하였다. 이어 중추원 관제를 다시 고쳐 황제 측근이 과반수를 차지하게 하였으나, 그 이후 개최된 중추원 회의에서 국정을 개혁할 대신 후보로 일본에 망명 중인 박영효가 추천되었다. 이를 자신의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 분노한 고종은 군대를 동원하여 만민 공동회와 독립 협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관련자들을 체포하였다.

 

 

 

4. 대한 제국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다

대한 제국은 19004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 참여하여 한국관을 세웠다. 한국관의 주전시관은 경복궁의 근정전을 재현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전시관 내부에는 신발, 모자, 비단 제품, 악기 등 다양한 공예품이 전시되어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전시된 물품은 막대한 수송비 부담으로 인해 대한 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자주독립과 전제 군주정 선포

독립 협회 해산 이후 대한 제국은 황실 중심의 근대화 정책1을 추진하였다. 18998월에는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여 대한 제국이 세계 만국이 공인한 자주독립 국가이며 전제 군주정임을 명시하였다. 대한국 국제에는 황제가 군 통수권,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등 모든 권한을 갖는다고 규정하였다. 이후 대한 제국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대한국 대청국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 대한 제국은 전제 군주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원수부를 설치하고 황제가 대원수2로서 국방과 군사에 관한 명령을 직접 장악하도록 하였다. 친위대와 진위대의 병력을 크게 늘렸고, 장교 양성에도 힘썼다. 또한, 황실 경찰 기구로 경위원을 설치하여 일본에 망명 중인 박영효, 유길준 등과 연계된 국내 세력의 정변 음모를 막고자 하였다.

 

황실 중심의 재정 확보

대한 제국은 황실 기구인 궁내부 산하에 통신, 철도, 광산, 세관, 외국 여행, 도량형 등을 담당하는 기구를 설치하여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궁내부의 재정 기관인 내장원은 정부가 관할하던 홍삼 전매권, 상업세 등 많은 재원을 흡수하였다. 대한 제국은 화폐 주조 기관인 전환국을 황제 직속으로 옮기고 백동화를 대량 발행하여 근대화 정책의 재원으로 잡았다.

 

근대 개혁 정책

대한 제국 정부는 1898년부터 양전 사업을 추진해 전국 토지의 3분의 2를 측량하고 토지 소유권을 입증하는 지계(地契)를 발급하였다. 이를 통해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파악하여 조세 수입을 증대하려 하였다. 또한, 전화를 가설하고, 우편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전차도 부설하였다. 섬유, 철도, 운수, 광업, 금융 분야에 근대적 시설과 회사를 설립하고 실업 학교와 각종 기술 교육 기관을 세웠다. 한편, 1902년부터 일본 제일 은행이 한국에서 제일 은행권을 발행하자 정부는 유통 반대 운동을 벌이고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금본위 지폐를 발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는 러일 전쟁이 일어나면서 중단되었다. 이처럼 대한 제국은 근대적 토지 소유권 확인, 상공업 진흥 등에 힘썼으나 집권 세력의 부정부패와 열강의 간섭으로 근대 국민 국가를 이끌 만한 개혁은 성취하지 못하였다.

 

민중의 저항

근대화 정책이 시행되는 가운데 농민들은 토지 측량과 조세 징수 등의 과정에서 수탈을 당하였다. 이에 전국 곳곳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동학농민군의 잔여 세력은 영학당이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1899년경 봉기를 일으켰다. 이들은 전라도 고부 흥덕 무장군 일대를 장악하였으나 곧 관군에게 진압되었다. 또한, 일부 가난한 농민과 상민은 1900년 전후 활빈당을 조직하여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지에서 부호의 재물을 빼앗거나 관청을 습격하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