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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몽골, 유라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다.

by 변교수 202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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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몽골, 유라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다.

몽골의 세계 제국 건설

몽골은 요와 금의 지배를 받으면서 부족 단위로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금이 쇠퇴하자 테무친은 몽골 부족을 통일하고 칭기즈 칸으로 추대되었다(1206). 칭기즈 칸은 천호제 조직과 친위대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금과 서하를 공격하고 중앙아시아를 정복하여 지배 영역을 넓혔다. 칭기즈 칸의 뒤를 이은 칸(Khan)들도 정복 전쟁을 계속하여 몽골은 유라시아 대륙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한편, 칭기즈 칸이 죽은 후 몽골 제국은 여러 울루스로 나뉘었다. 왕위 다툼에서 승리한 쿠빌라이 칸은 수도를 대도(베이징)로 옮기고 원을 건국하였다(1271). 이후 그는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전역을 지배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여러 울루스가 독자적인 영토를 인정받게 되어 몽골 제국은 울루스들의 느슨한 연합체로 유지되었다.

 

원의 중국 지배

중국 전역을 지배하게 된 원은 관료제와 주현제를 비롯한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여 통치하였다. 그러나 몽골 제일주의에 따라 민족 차별 정책을 실시하여 몽골인과 색목인을 우대하고 한인과 남인은 차별하였다. 이와 함께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고유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티베트 불교를 보호하였다.

14세기 들어 원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분쟁과 귀족의 사치 등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을 거두고 지폐를 남발하면서 물가가 폭등하여 백성의 불만이 커졌다. 이러한 가운데 백련교도 중심의 홍건적이 반란을 일으켜 원은 쇠퇴해 갔다. 결국 원은 명을 세운 주원장에 의해 북쪽 유목 지대로 밀려났다(1368).

 

동서 교류의 확대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통합하면서 동서 교류가 활발해졌다. 몽골 제국은 중앙과 각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에 역참을 세우고 관리나 사신에게 숙식과 말을 제공하였다. 이를 통해 유럽인과 이슬람 상인들이 편리하게 중국을 방문하는 등 초원길과 비단길을 통한 교류가 활발해졌다. 동서 교류가 늘고 선박 제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송 대에 발달하였던 바닷길도 번영하였다. 원 대에는 인적 교류도 활발하였다.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가 원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담은 동방견문록이 유럽에 소개되었고, 모로코 출신 이슬람교도 이븐 바투타는 중국 등지를 여행하고 여행기를 남겼다.

동서 교통로가 발달하고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슬람교, 크리스트교, 티베트 불교 등의 다양한 종교와 이슬람 세계의 역법, 천문학, 대포 제작 기술 등이 중국에 유입되었다. 한편, 중국의 비단, 화약, 나침반, 인쇄술, 도자기 등은 이슬람 세계를 거쳐 서양에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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