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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고려가 성립되고, 무사가 일본을 통치하다

by 변교수 202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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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려가 성립되고, 무사가 일본을 통치하다

고려의 대외 관계

10세기 초 왕건이 건국한 고려는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하여 한반도를 다시 통일하였다(936). 이후 고려는 거란, 여진의 잇따른 침략을 물리쳤다. 13세기부터는 몽골의 침략에 맞서 오랜 기간 항전하였으나 결국 몽골과 강화를 맺고 몽골()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원 간섭기에 즉위한 공민왕은 자주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 시기에 등용된 신진 사대부는 14세기 말 이성계와 연합하여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였다(1392).

 

일본 막부 정권의 성립

헤이안 시대 후반 율령 체제가 동요하고 사유지가 인정되었다. 그러자 호족들은 장원을 확대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사가 되거나 무사를 고용하였다. 무사들은 서로 연합하거나 항쟁하면서 무사단으로 발전하였다.

12세기 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무사 간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가마쿠라 막부를 열었다. 가마쿠라 막부는 쇼군과 가신 간의 토지를 매개로 한 주종 관계로 유지되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주종 관계를 맺은 무사에게 지방의 치안 유지와 장원 관리를 맡겼다. 이후 막부의 쇼군이 최고 지배자로서 군림하고 무사 계급을 다스리는 일본 특유의 봉건제가 시행되었

 

막부 정권의 동요

13세기 후반 원의 쿠빌라이는 고려와 연합하여 두 차례 일본을 침입하였다. 가마쿠라 막부는 무사를 동원하여 경계와 방어를 강화하면서 여ᆞ원 연합군에 맞섰다. 또한 전쟁 중에 태풍이 불어와 고려와 원의 연합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를 기반으로 가마쿠라 막부는 원의 침입을 막아 냈다.

그러나 원과 싸우는 과정에서 가마쿠라 막부의 힘도 약화되었다. 두 차례의 싸움에서 경제적 피해를 입은 무사들이 막부에 반발하였고, 이 과정에서 봉건 질서가 동요하여 가마쿠라 막부는 쇠퇴해 갔다.

 

가마쿠라 막부의 사회와 문화

가마쿠라 시대에는 황무지 개간으로 경작지가 넓어졌고, 벼의 품종을 개량하여 일부 지역에서 쌀과 보리의 이모작이 가능해졌다. 농업 생산력이 늘어나면서 주요 도시에서 상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져 농산물과 생활용품을 교환하는 시장이 열렸다. 수공업도 발달하여 장원에서 전문적인 수공업자가 활약하였으며, 상공업자들은 동업 조합을 조직하고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였다.

한편, 가마쿠라 시대에는 송ᆞ원과의 사무역이 이루어지면서 송의 동전이 수입되어 화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헤이안 시대 말부터 정치와 사회가 불안해지자 가마쿠라 시대에는 불교가 다시 융성하였다. 당시에 등장한 정토종은 누구든 염불만 외우면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가마쿠라 시대의 불교는 헤이안 시대의 귀족적 불교와 달리 서민적이고 대중적으로 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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