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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발전하다

by 변교수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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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발전하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성립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른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34년에 동방 원정을 시작하여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더스강 유역까지 진출하였다. 그 결과 인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동서 교역로가 열렸다. 알렉산드로스는 동방의 전제 군주정을 받아들여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는 한편, 피정복민의 종교와 관습은 존중해 주었다. 그는 각지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여 그리스인을 이주시키고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의 결혼을 장려하는 등 동서 융합을 꾀하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시리아, 이집트, 마케도니아 등으로 분열되었다가, 기원전 1세기 후반까지 모두 로마 제국에 정복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동서 융합을 위한 노력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정복한 지역을 강압적으로 다스리기보다 포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넓은 제국을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 그리스와 오리엔트 문화의 융합에 힘썼다. 그는 인더스강 서부 지역을 정벌하고 페르시아에 돌아온 후 페르시아식 왕관과 옷을 걸쳤다. 또 처음으로 그리스인들에게 왕 앞에서 무릎을 꿇도록 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자신을 파라오라 하며 동방의 전제 군주제를 수용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동서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지배층을 융합하기 위해 마케도니아 귀족에게 페르시아 여성과의 결혼을 권장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도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의 딸과 결혼하였고, 휘하의 장군들과 페르시아 여인들의 합동결혼식을 주선하기도 하였다.

 

헬레니즘 문화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사업으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가 발달하였다. 헬레니즘 문화는 그리스의 폴리스적 성격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세계 시민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또한 대제국 건설로 폴리스 중심의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자,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철학에 잘 반영되어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를 통해, 에피쿠로스학파는 마음의 안정과 만족을 통해 개인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자연 과학도 크게 발전하였다. 물리학에서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였고, 수학에서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가 기하학 체계를 갖추었다. 천문학도 발달하여 지구의 자오선이 측정되고 태양 중심설이 제기되었으며, 의학에서 인체 해부가 시작되었다.

예술 분야에서는 이상적인 아름다움보다 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중시되었다. 조각에서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과 감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관능적인 작품이 많이 등장하였는데, 밀로의 비너스상, 라오콘 군상, 니케상이 대표적이다. 헬레니즘 미술은 인도에 전파되어 간다라 양식이 성립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로마 제국을 거쳐 유럽에 전해져 유럽 문화 발달의 기반이 되었다.

 

헬레니즘, 폴리스 세계를 넘어서

세계 시민(Cosmopolitan)의 등장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활동으로 종래의 폴리스가 지닌 실질적 의미가 사라져 도시 국가와 비도시 국가, 그리스인과 이방인과의 구분이 사라져 갔다. 헬레니즘 사람들은 세계를 하나로 보고 인간을 여기에 속한 세계 시민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스토아학파에서 잘 드러났다. 그들은 인간은 이성을 가진 신의 자녀로서 모두 평등하다고 하였다.

 

자연 과학의 발달

헬레니즘 시대에는 국가가 과학 연구를 지원하고 장려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왕궁 안에 있는 무세이온에는 도서관, 동물원, 식물원, 천문대, 실험실, 해부실이 있어 100여 명의 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그리스의 철학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과학이 두루 섞이면서 기하학, 천문학, 의학, 수학 등의 자연 과학이 크게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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