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정치 세력이 성장하다.

4. 원의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정치 세력이 성장하다.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던 시기에 몽골의 풍습이 고려에 들어와 유행하였다. 이에 따라 고려의 국왕과 관리들은 몽골식으로 머리를 깎았고, 고려의 관리들은 정수리 부분이 납작하면서 둥근 모양의 발립을 썼다. 벼슬아치나 장사치처럼 말끝에 직업을 나타내는 ‘치’도 몽골어에서 유래하였다. 이러하듯 원의 문화는 고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원의 간섭과 일원적 국제 질서의 강화

원과 강화를 맺은 이후 고려는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하였으나 원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원은 일본 원정1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고려에 설치하였던 정동행성을 그대로 두고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였다. 또한, 원은 고려의 영토를 빼앗아 화주에 쌍성총관부, 서경에 동녕부,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이 지역을 직접 지배하였다. 한편, 고려 국왕과 원 공주가 혼인하면서 고려는 원의 사위 나라인 부마국이 되었다. 이에 따라 왕실의 호칭과 관제의 격도 낮아졌다. 원은 조공이라는 명목으로 공녀와 환관을 뽑아서 갔고 금, 은, 인삼, 매 등의 특산물을 거두어 갔다.

원의 세력이 강성한 상황에서 충렬왕은 고려의 자주성과 실리를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원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부마의 지위를 이용하여 원 관리의 횡포를 막았다. 고려 국왕이 정동행성의 장관을 겸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여 성사시켰고, 동녕부와 탐라총관부도 돌려받았다. 그러나 충렬왕 이후에는 자주적 외교가 약화하였고 원에서는 고려 국왕을 마음대로 임명하거나 교체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원 간섭기에 고려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질서에 포함되었다.

 

원 간섭기 고려 국왕의 칭호는 무엇이었을까?

원 간섭기에 고려는 왕실 호칭과 관제를 제후국의 수준에 맞게 낮추었다. 고려 충렬왕 때 고려 국왕의 정식 칭호는 ‘특진 상주국 개부의동삼사 정동행중서성우승상 부마 고려국왕’이었다. ‘특진’부터 ‘개부의동삼사’까지는 원 황제가 준 작위이고, ‘정동행중서성우승상’은 원에서 고려에 설치한 지방 관청의 최고 관리를 뜻하였다. ‘부마’는 원 황제의 사위를 의미하며, ‘고려국왕’은 제후국인 고려의 왕이라는 뜻이었다. 고려 국왕들이 죽은 뒤에는 원의 황제가 내려준 ‘충’ 자를 붙인 충렬왕, 충선왕과 같은 시호를 사용하였다. 또한, 신하들은 국왕을 ‘전하’라고 불렀고, 왕위 계승자를 세자라 칭하였다. 이 시기 관청과 관직의 명칭도 원보다 낮은 표현으로 바뀌었다.

 

공민왕의 자주성 회복과 내정 개혁

원 간섭기 고려에서는 권문세족이라는 새로운 지배 세력이 등장하였다. 권문세족은 친원적 성향이 강하였고, 주로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여 도평의사사를 장악하였다. 또한, 이들은 막대한 농장을 소유하였다. 이에 일부 개혁 세력은 정치도감을 설치하여 이들의 불법 행위를 바로잡으려 하였다. 하지만 원의 기황후에게 힘입어 위세를 떨치던 기씨 일족이 정동행성이문소를 이용하여 개혁을 좌절시켰다.

14세기 중반에는 공민왕이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공민왕은 기씨 일족을 제거하고 정동행성이문소를 폐지하였으며,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영토를 회복하였다. 제후국 수준으로 낮아졌던 왕실의 호칭과 관제를 고려 전기의 체제로 회복하였다. 공민왕은 원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자 명목상의 사대 관계를 인정하여 국제 관계를 안정시켰다. 이후 승려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해방하였다. 그러나 홍건적과 왜구가 침입하고 권문세족이 저항하여 개혁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한편, 명이 원을 몰아내고 중국을 장악하자 고려는 명과 국교를 맺었다. 그러나 명이 오히려 고려를 압박하자 권문세족은 원과 친할 것을 주장하며 내정 개혁에 반발하였다. 결국 신돈이 제거되고 공민왕이 시해되면서 개혁은 중단되었다.

 

신진 사대부의 성장과 고려의 멸망

고려 후기에는 원과의 교류가 활발하여 고려에서 원으로 가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원에서 활동한 고려의 학자들이 성리학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정치 세력인 신진 사대부가 형성되었다.

신진 사대부들은 공민왕 때 과거를 통해 정계에 진출하였고, 우왕 때에는 독립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도덕적 삶을 중시한 성리학을 이론적 근거로 하여 부정부패를 일삼는 권문세족을 비판하였다. 또 한 명과 화친하고 원과 관계를 끊을 것을 주장하였다.

신진 사대부는 새롭게 성장한 무인인 최영, 이성계와 손을 잡았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권력을 장악한 신진 사대부는 고려를 유지하면서 폐단을 고칠 것을 주장한 온건파와 새 왕조를 세워 개혁을 추진할 것을 주장한 급진파로 나뉘었다. 조준, 정도전을 대표로 하는 급진파는 『주례』에 근거하여 성리학적 이상 정치를 실현하려 하였다. 급진파와 이성계는 전시과를 없애고 과전법을 시행하였다. 이들은 정몽주 등 온건파를 제거하고 고려 왕조를 무너뜨렸다(1392).

 

고려 후기의 국제 관계 변화와 대외 인식

◼원 간섭기에 집필된 이승휴의 『제왕운기』

요동에 별도의 하늘과 땅이 있으니, 별자리도 중국과 구분된다네. 처음에 어느 누가 나라를 열었던가. 제석의 손자, 이름은 단군이로다. ...... 공주와 혼인하는 은총을 입으니, 성대하도다. 황제를 보필하는 이로움이여! 몸소 효도하고, 왕위에 오르는 복을 받았네. 천자의 누이(원 공주)는 대궐을 관장하고, 황제의 외손자(충선왕)는 세자가 되었네. 조상의 기업은 다시 빛나고, 황제의 은혜는 멀리에서 적셔 온다. - 『제왕운기』 제왕운기(강원 원주)

◼ 정몽주의 상소문

우리 동방은 예를 다하여 중국을 섬기면서 누가 천하의 의로운 군주인가를 살폈을 뿐입니다. 근래 원이 쫓겨나고 명이 천하를 장악하였습니다. 원이 나라를 잃고 와서 음식을 구하는 것은 잠시 목숨을 연장해 보려는 것입니다. 명에서는 이미 우리를 의심하고 있을 텐데 우리가 원과 통한다는 것을 들으면 죄를 묻는 군사가 수륙으로 한꺼번에 쳐들어올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장차 무슨 말로 그들을 대하겠습니까? - 『고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