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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사대교린 정책을 취하다.

by 변교수 2023.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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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대교린 정책을 취하다.

조선은 명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냈고 비정기적으로도 사신을 보냈다. 명에서는 조선 사절단을 대접하는 데 큰 비용이 들었고 사절단이 돌아갈 때 답례품을 주어야 했기에 부담이 컸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1년에 3회 사신을 파견하겠다고 요구하여 이를 이루었고 16세기경에는 1년에 4번 사신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부정기적인 사절단까지 포함하여 많을 때는 1년에 7~8회의 사절단이 명에 왕래하였다.

 

명과의 사대 외교

중국에서 명이 성립한 뒤 동아시아에서는 명을 중심으로 한 국제 관계가 형성되었다. 명이 주변국에 조공을 요구하자 조선, 일본, 대월 등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명과 동아시아 각국 사이에는 조공 책봉 체제를 바탕으로 한 사대 외교가 보편적인 외교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명은 주변국의 조공을 받는 대가로 그 지역의 통치자를 국왕으로 책봉하였다. 책봉은 각국의 독립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형식적인 절차로, 책봉국은 왕권의 안정과 국제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제 질서 속에서 조선은 사대교린의 원칙에 바탕을 두고 주변국과 교류하였다. 건국 초 태조와 정도전이 요동 정벌을 추진하면서 조선은 명과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태종 때부터 조선과 명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조선은 명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품을 보냈으며, 명에게 책봉을 받고 명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명은 조공에 대한 답례로 서적, 약재, 도자기 등의 물품을 보냈다. 조선은 이러한 사대 외교를 통해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시키고 영토를 확장하였다. 또한, 중국의 문물을 수용하는 등 경제적 문화적 실리를 추구하였다.

 

조선 정부는 왜 명에 자주 사신을 파견하였을까?

조선은 명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냈고 비정기적으로도 사신을 보냈다. 명에서는 조선 사절단을 대접하는 데 큰 비용이 들었고 사절단이 돌아갈 때 답례품을 주어야 했기에 부담이 컸다. 명 황제는 너희 나라 사신의 행차가 왕래하는 데 길이 멀어 비용이 많이 드니, 지금부터는 3년 만에 한 번 조회하라.”라고 하였다. 일본이 10년에 1회로 제한된 것에 비해 조선의 사절단 파견 횟수는 훨씬 많았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1년에 3회 사신을 파견하겠다고 요구하여 이를 이루었고 16세기경에는 1년에 4번 사신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부정기적인 사절단까지 포함하여 많을 때는 1년에 7~8회의 사절단이 명에 왕래하였다.

 

주변국과의 교린 관계

조선은 여진, 일본을 비롯하여 주변 세력과 교린 관계를 맺어 교류하였다. 여진과는 국경 지역에 무역소를 설치하여 제한적인 교류를 허용하였다. 그러나 여진인이 국경을 침범하여 약탈을 행하는 경우 군대를 동원하여 강경하게 토벌하였다. 조선은 건국 직후부터 북방 영토 확장에 나서 태종 때 명으로부터 북방 지역의 관할권을 인정받았다. 여진의 약탈이 계속되자 세종 때에는 여진을 내몰고 압록강 지역에 최윤덕을 파견하여 4군을 설치하고, 두만강 지역에 김종서를 파견하여 6진을 개척하였다. 조선은 이 지역에 남부 지방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그 지역의 토착민을 토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귀화한 여진족 지배층에는 관직을 수여하고 토지를 주기도 하였다.

조선은 일본의 바쿠후 정권과도 교린 관계를 맺었다. 조선 건국 초부터 왜구의 약탈이 계속되자 정부는 무기를 개발하여 왜구를 격퇴하는 한편, 왜구 제압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대마도 도주를 통해 바쿠후와 협의하려 하였다. 그러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세종 때에는 이종무를 보내 대마도를 토벌하고 일본과의 교역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대마도 도주의 요청으로 제포(창원 진해), 부산포(부산 동래), 염포(울산)의 항구를 열어 제한적인 교역을 허용하였다. 일본과의 교역은 왜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두 나라는 사신을 보내 교류하였다. 한편, 조선 정부가 3포에 거주하던 일본인에 대한 무역 통제를 강화하자 일본인이 소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삼포 왜란).

그 밖에도 조선은 시암(태국), 자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 및 류큐(오키나와)와도 교류하였다. 이들 국가는 사신을 통해 각종 토산품을 조선에 가져와 옷감, 문방구 등과 바꾸어 갔다. 특히 류큐와의 교역이 활발하여 류큐의 사신이 조선을 방문하여 불경, 범종, 유교 경전, 부채 등을 가져갔다.

사대교린 섬기다 크다 사귀다

이웃 큰 나라를 섬기고 이웃 나라와 대등하게 교류하는 외교 정책을 의미한다. 조선은 중국과는 사대 관계를 맺고, 주변국과는 교린 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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