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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삼국이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하다.

by 변교수 2023.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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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국이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하다.

고구려의 고국천왕은 194년 봄에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에 갚도록 하는 진대법을 시행하였다. 일종의 빈민 구제 제도인 진대법은 농민들의 빈곤을 덜어주어 농민들이 귀족에게 예속되는 것을 막았다. 이처럼 고국천왕은 진대법 시행으로 민생 안정을 꾀하고, 귀족 세력이 커지는 것을 억제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영토 확장과 왕위 계승의 안정

삼국은 활발한 정복 활동을 펼치며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이를 주도한 왕과 왕이 속한 부의 권력이 강화되는 한편, 국정 운영에서 밀려나는 부가 생기면서 각 부 사이에 세력의 차이가 생겼다. 이 과정에서 삼국의 왕들은 왕위 계승의 안정을 꾀하였다.

고구려는 1세기 초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세력을 넓혔다. 1세기 후반 태조왕은 옥저를 정복하였고, 랴오둥 지역으로 진출을 꾀하였다. 2세기경 고국천왕은 농민층의 경제적 몰락을 막고자 진대법을 시행하였고, 4세기경 미천왕은 낙랑군을 몰아냈다.

백제는 3세기경 고이왕이 마한의 소국들을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장악하였다. 4세기 중엽 근초고왕은 왕위 계승을 안정시켰다. 또한, 마한의 남은 세력을 복속하고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며, 중국의 동진과 교역하고 왜와 교류하였다.

신라는 3~4세기에 진한 소국들을 대부분 복속하였다. 4세기 후반 내물왕 때에는 김씨의 왕위 계승이 확립되었고, 왕호도 마립간으로 바뀌었다.

 

율령 반포와 제도 정비에 기반한 성장

삼국은 국가 운영의 기틀이 되는 율령을 반포하고 이를 기반으로 통치 제도를 정비하였다.

고구려는 4세기 후반 소수림왕이 태학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또한, 율령을 반포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기준과 국가 기구 제도를 마련하였다. 이어 4세기 말에 즉위한 광개토 대왕은 안정된 왕권을 바탕으로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을 차지하였다. 신라에 침입한 왜를 물리쳤으며, 랴오둥을 비롯한 만주 일대를 장악하였다. 뒤를 이은 장수왕은 남진 정책을 펼쳐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장악하였다.

백제는 3세기 후반 관료 체계의 기틀을 마련하고 법령을 정비하였다. 이를 토대로 4세기경에는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5세기 후반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면서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는 등 위기에 처하였다. 백제는 6세기에 들어 무령왕의 노력으로 중흥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어 성왕은 사비로 수도를 옮기고, 중앙 관청을 22부로 설치하는 등 정치 기구를 정비하였다.

신라는 6세기에 통치 체제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다. 지증왕은 왕호를 중국식인 으로 바꾸었고, 나라 이름도 신라로 정하였다. 법흥왕은 병부를 설치하여 군사권을 왕에게 집중하고, 율령을 반포하였다. 또한, 관리의 공복을 제정하였으며, 상대등을 설치하여 국정을 총괄하는 재상의 역할을 부여하였다. 진흥왕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하였다. 정치적 발전을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강 유역을 모두 장악하고, 고령의 대가야를 병합하였으며, 북쪽으로 함흥평야까지 진출하였다. 진흥왕은 점령지에 단양 신라 적성비와 순수비 등을 세워 영토 확장을 기념하였다.

 

관등제와 지방 통치 체제 정비

삼국은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성장하면서 관등제를 확립하고 관료 체제를 정비하였다. 고구려는 3세기 후반에 5부 연맹이 해체되면서 지배 세력을 관등에 편입시켜 서열화하였다. 백제는 고이왕 때 6좌평을 비롯한 관등과 공복을 마련하여 위계질서를 세웠다. 신라는 6세기 법흥왕 때 17관등제를 정비하였다. 신라에서는 지방의 부족장 세력이 중앙 귀족으로 포섭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부의 세력에 따라 지위를 받으면서 골품제라는 신분 제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골품제가 관등제와 결합하면서 골품에 따라 승진할 수 있는 등급이 정해졌다.

삼국은 관등제를 정비해 각 부의 지배 세력을 중앙 귀족으로 만들어 국왕 중심의 위계질서를 확립하였다. 왕과 부의 대표들이 모여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던 회의는 귀족 회의로 성격이 바뀌었다. 귀족 회의에서 논의한 결과는 왕의 재가를 받은 후 발표되었다.

한편, 삼국이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나아가면서 각 부는 다시는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왕은 정복 전쟁으로 넓힌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전국을 행정 구역으로 편제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여 다스리는 지방 통치 체제를 마련하였다. 고구려는 성을 중심으로 행정 구역을 나누었다. 백제는 무령왕 때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였으며, 성왕 때에는 전국을 5개의 방으로 나누었다. 신라는 6세기경 전국을 주 군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 촌을 두는 지방 행정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를 통해 지방에 대한 중앙 정부의 지배력을 강화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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