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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조선과 일본에서 독자적 문화가 발달하다.

by 변교수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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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과 일본에서 독자적 문화가 발달하다.

조선의 발전

이성계(태조)가 건국한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아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였다. 세종 때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민족 문화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국력이 약화되자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수취 제도를 개혁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농업 생산력이 증대하고 상품 작물의 재배가 늘어나면서 상업이 발달하였다. 이에 힘입어 서민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판소리, 탈춤, 풍속화 등 서민 문화가 발달하였다.

 

무로마치 막부와 에도 막부

14세기 일본에서는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교토에 무로마치 막부(1336~1573)를 열었다. 무로마치 막부에서는 농업이 발달하여 이모작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상업도 발달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일본의 전통문화인 다도와 꽃꽂이의 기반이 다져졌다. 그러나 15세기 후반 무로마치 막부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100여 년간 전국 시대가 전개되었다.전국 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그가 사망하면서 일본군은 조선에서 철수하였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의 자리를 차지하여 에도 막부를 열었다(1603). 막부의 쇼군은 중앙과 자신의 직할지를 다스렸고, 다이묘(영주)에게는 번이라고 불리는 영지를 주어 독립적인 지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산킨코타이로 다이묘를 통제하는 한편, 국왕의 정치 간여를 금지하여 막부의 통제력을 강화하였다. 이로써 일본에서는 중앙 집권적인 봉건 체제가 구축되었다(막번 체제)

 

조닌 문화의 발달

에도 시대에 막부와 번의 다이묘들은 계획도시인 조카마치에 무사들을 거주하게 하였다. 이는 무사를 농촌에서 분리하고,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조치였다. 그리고 조닌이라 불리는 상공업자들은 조카마치나 교통의 요충지에 거주하면서 무사에게 물자를 제공하였다.

무사와 조닌이 조카마치에 거주하면서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대표적 조카마치인 에도는 18세기 초에 인구가 100만을 넘었으며, 주요 도시들은 각지의 물품이 모이는 상업 도시로 번성하였다.

에도 시대에는 농업 기술이 발달하여 농업 생산량이 늘어났다. 또한 시장이 발달하고 상인이 크게 늘어났으며 동업 조합(가부나카마)을 만들어 영업을 독점하는 상인들도 나타났다. 도시 생활이 확대되자 사람들의 소비도 늘어 상업은 더욱 발전하였다. 이에 힘입어 중산층으로 성장한 조닌이 여가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가부키나 우키요에 같은 조닌 문화가 발달하였다.

 

일본의 대외 교류

무로마치 막부는 명에 책봉을 받고 감합 무역을 실시하면서 정치적ᆞ경제적 안정을 꾀하였다. 감합 무역은 중지와 재개를 거듭하며 16세기 중엽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16세기경부터 포르투갈, 에스파냐 등 서양 상인이 일본에 진출하면서 일본인의 해외 진출도 활발해졌다. 그러자 에도 막부는 해외로 나가는 선박에 막부의 도장을 찍은 주인장을 주어 공신력을 높였다. 그러나 막부는 1630년대 중반 쇄국 정책을 강화하여 크리스트교 포교를 금지하고 사무역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다만 조선의 통신사를 통해 선진 문물을 수용하고, 나가사키를 개방하여 중국, 네덜란드 상인과 교역하였다. 그 과정에서 네덜란드인으로부터 서양의 학문과 지식이 전해졌는데,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난학이라고 하였다. 일본은 난학으로 서양의 조선술, 포술, 천문학 등을 배우며 사고의 폭을 넓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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