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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한국사 & 세계사

[한국사의 창] 1-3.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

by 변교수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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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

한 신문에 좌우 합작을 풍자하는 만평이 실렸다. 손을 잡으며 뜻을 같이하려는 여운형과 김규식을 양 끝에서 극좌 세력과 극우 세력이 잡아당기고 있었는 데 당시 여운형과 김규식이 주장한 좌우 합작에 의한 민족 국가 건설은 대중에게 큰 지지를 얻었지만, 대부분의 정치 세력은 이에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우호적이지 않았다.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

 

좌우 합작 운동의 전개

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자 이승만이 통일 정부 수립이 어렵다면 남한만이라도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정읍 발언을 발표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가운데 여운형과 김규식 등 중도 세력은 한반도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 합작 운동을 전개하였다. 미 군정의 지원과 대중적 지지 속에 결성된 좌우 합작 위원회는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고, 미 군정은 이 원칙을 근거로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좌우 합작 운동에 김구, 이승만, 조선 공산당 등 당시 좌우를 대표하는 세력이 참여하지 않아 좌우 합작 위원회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좌우 합작 7원칙 중 신탁 통치, 토지 개혁, 친일파 처벌 문제 등에서 좌익과 우익의 의견이 충돌하였다. 그러던 중 냉전 체제가 격화되자 미 군정은 좌우 합작 운동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였고, 운동을 이끌던 여운형이 암살된 이후 좌우 합작 위원회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좌우 합작 만평(3 특보, 1946. 10. 28.)

좌우 합작 위원회는 좌익 세력의 주장 5가지와 우익 세력의 주장 8가지를 절충하여 좌우 합작 7원칙을 만들었다. 좌우 합작 위원회는 한반도에 민주주의 임시 정부의 수립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으며, 유상 매수 무상 분배 원칙에 따른 토지 개혁과 민족 반역자 처단 등도 도모하였다. 이는 당시 북한에서 무상 몰수 무상 분배의 토지 정책 추진과 더불어 사회주의 개혁이 진행되고 있었던 상황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좌우 합작 위원회가 발표한 7원칙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1.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정에 따라 남북의 좌우 합작으로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수립할 것

2. 미소 공동 위원회의 속개를 요청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할 것

3. 토지는 몰수, 유조건 몰수, 매수하여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하고, 중요 산업을 국유화할 것

4. 친일파, 민족 반역자를 처단할 조례를 제정할 것

5. 정치범을 석방하고 남북, 좌우의 테러를 중지할 것

6. 입법 기관의 권한, 구성, 운영 등을 좌우 합작 위원회에서 작성 실행할 것

7. 언론, 집회, 결사, 출판, 교통, 투표의 자유를 보장할 것 - 좌우 합작 7원칙, 1946. 10

 

유엔의 한반도 문제 논의

1947년 열린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에서도 미국과 소련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대립하였다. 결국,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유엔 총회에 상정하였다. 194711, 소련이 불참한 가운데 개최된 유엔 총회는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를 통해 한국에 정부를 수립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1948년 초에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소련이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입북을 거부하자, 유엔은 소총회를 열어 한국 임시 위원단의 접근이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남북 협상의 추진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은 유엔의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 결정을 환영하였고, 좌익 세력은 이에 반대하였다. 김구와 김규식 등은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로 남북이 분단될 위기에 놓였다고 판단하고,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한 정치 지도자 회담을 북측의 김일성 등에게 제안하였다. 그리하여 19484, 평양에서 남북한 주요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와 남북 지도자 회의가 개최되었다 (남북 협상). 여기에서 단독정부 수립 반대, 미소 양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이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남북에서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절차가 진행되면서 남북 협상은 실패로 끝이 났다.

 

정부 수립을 둘러싼 두 의견

이승만의 정읍 발언(1946. 6.)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미소 공동 위원회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치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 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니 여러분도 결심해야 할 것이다.

 

김구의 3천만 동포에게 눈물로 고함(1948. 2.).

한국이 있어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무슨 단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주독립적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는 이때 어찌 개인이나 집단의 사리사욕을 탐하여 국가 민족의 백년대계를 그르칠 수 있으랴?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단독정부 수립 반대 운동

유엔 소총회의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 결정 이후 분단 상황이 더욱 굳어지자, 단독 선거 실시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운동이 각지에서 일어났다. 1947년 제주도에서 3·1절 기념식 후 군중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이때 경찰이 발포하면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제주도민들은 이를 규탄하는 항의 시위를 벌이며 크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경찰과 우익 청년단이 강압적으로 대응하여 사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48년 남조선 노동당과 일부 주민들은 단독 선거 저지와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내세우며 무장봉기하였다(제주 4·3 사건).

 

무장 세력의 단독 선거 반대 활동으로 제주도에서는 총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지지 못하였다. 정부 수립 이후에도 무장 세력의 저항은 지속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군대와 경찰, 우익 청년단을 동원하여 대규모 진압 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였다. 한편,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가 여수에 주둔한 군대를 파견하여 제주 4·3 사건의 잔여 세력을 진압하려 하자, 군대 내 좌익 세력이 출동을 거부하고 여수와 순천을 일시 점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여수 순천 10·19 사건).

 

제주 43 평화 공원의 건립

2000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2003년 정부는 국가 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진 점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으로 사과하였다. 2008년에는 제주 4·3 평화 재단이 만들어졌다.

 

새 국가 건설 방향을 둘러싼 다양한 활동

38도선 이북에는 소련군이, 이남에는 미군이 들어왔다. 한국인들은 새 국가 건설을 둘러싸고 다양한 주장을 내세웠다. 서로 다른 의견이지만 하나의 목표를 꿈꾸었을 여러 사람의 주장을 살펴보자.

 

자유신문, 1945. 11. 24. 김구

나와 나의 동료는 오직 완전히 통일된 자주의 민주 국가를 완성하기 위하여 여생을 바칠 결심으로 귀국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조금이라도 가림 없이 심부름을 시켜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 완전히 독립 자주하는 통일된 신민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공동 분투합시다. -

 

동아일보, 1947. 4. 29. 이승만

나는 좌우 합작의 성공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 정책이 공산주의와 합작을 단념하였으므로 캄캄하던 우리의 길은 열렸다. 우리 동포는 한데 뭉치어 임시 입법 의원으로 하여금 총선거 법안을 급속히 제정하게 하여 남북통일을 위한 남조선과도 정권을 수립해야 한다.

 

중외신보, 1946. 6. 12. 여운형

단독정부가 출현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전 민족이 반대할 것이다. ...... 현재 좌우익은 악화된 감정과 경제적 이해에 관한 문제로 대립되어 있다. 좌우익이 합작해 우리 민족 전체의 의사를 대표하는 통일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8월 테제, 1945. 9. 25. 박헌영

우리는 정권을 위한 투쟁을 전국적 범위로 전개해야 하니, 해방 후의 새 조선은 혁명적 민주주의 조선이 되어야 한다. 기본적 민주주의적 여러 가지 요구를 내세우고 이것을 철저히 실천할 수 있는 인민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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