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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296

[한국사의 창] 6-3. 건국을 준비하다 6-3. 건국을 준비하다 1940년 9월, 중국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에는 남성 대원뿐만 아니라 여성 대원도 있었다. 오광심, 조순옥, 김정숙, 지복영이 여성 대원으로 한국광복군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주로 총사령부의 비서 업무와 선전 사업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의 역량 집중 한국 광복 운동 단체 연합회와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의 통합 회의가 결렬된 이후 한국 국민당, 한국 독립당, 조선 혁명당 등 3개 정당은 1940년 한국 독립당을 결성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이끌었다. 1940년 9월, 중국 국민당을 따라 충칭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또한, 이전의 집단 지도 체제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석 중심의 단일 지도 체제를 마련하고 김구.. 2023. 6. 24.
[한국사의 창] 6-2. 중국 관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6-2. 중국 관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938년에 창설된 조선 의용대는 중국 관내 최초의 한국인 무장 부대로, 창설 당시에는 200여 명으로 된 두 개의 부대였으나, 1940년에는 300여 명으로 늘었다.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된 한국인 병사들은 부대를 탈출하여 조선 의용대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한인 애국단의 활동 국민대표 회의(1923)가 성과 없이 끝난 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더욱이 만보산 사건으로 한국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감정이 나빠지면서 중국 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김구는 1931년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침체된 임시 정부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하였다. 한인 애국단원 이봉창은 1932년 1월 일본 도쿄에서 일본 국왕이 타고 가는 마차를 향해 .. 2023. 6. 24.
[한국사의 창] 6-1. 만주에서 항일 투쟁을 벌이다 6. 광복을 위한 노력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규군인 한국광복군은 일제의 침략 전쟁이 확대되자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여 연합군과 공동 작전을 벌였다. 한국광복군 부대원들은 태극기에 자신의 이름을 적거나 ‘굳세게 싸우자, 자유를 찾자.’ 등과 같은 글귀를 적어 독립에 대한 결의와 항일 투쟁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6-1. 만주에서 항일 투쟁을 벌이다 ‘동무야 잘 싸웠다 / 조선의 혁명군 / 총 끝에 번갯불이 반짝거리어 / 악마의 왜놈들을 쳐부수던 밤 / 악마의 왜놈들을 쳐부수던 밤’ 이 노래는 1930년대 조선 혁명군이 부르던 군가로, 일제에 맞선 조선 혁명군의 항일 투쟁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양세봉이 이끈 조선 혁명군은 1929년에 결성되었으며 1930년대 이후부터는 중국군과 연합하여 항일 투쟁을 전.. 2023. 6. 24.
[한국사의 창] 5-2. 일제가 침략 전쟁에 한국인을 동원하다 5-2. 일제가 침략 전쟁에 한국인을 동원하다 1944년 일본 탄광 회사에서 한국인에게 발행한 징용 고지서에는 징용된 사람의 이름과 주소, 징용 장소, 징용되어 종사해야 하는 업무 등이 적혀 있다. 일제는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인들을 탄광, 군수품 공장, 비행장 공사장 등지로 동원하기 위하여 징용을 실시하였다. 일제의 대륙 침략과 병참 기지화 정책 대공황의 영향으로 경제 위기가 깊어진 일제는 일본, 한국, 만주를 연결하는 경제 블록을 조성하여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에 일제는 1931년 만주 사변을 일으켜 대륙 침략을 감행하였고, 이듬해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다. 일제는 만주 점령 이후 만주를 농업 원료 지대로, 한국을 중화학 공업 지대로 설정하고 조선 공업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 2023. 6. 24.
[한국사의 창] 5-1. 일제가 침략 전쟁을 확대하다 5. 전시 동원 체제와 민중의 삶 일제는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의미인 내선일체를 내세웠다. 내선일체를 위해 일제는 한국인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등 일본 국왕의 백성이라는 의식을 주입하고자 하였다. 이는 한국인을 일본인에 동화시켜 전쟁에 쉽게 동원하려는 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일제는 한국인에게 군수품으로도 사용되었던 가마니를 만들도록 하였고, 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다. 또한, 근로 보국대를 조직하여 도로, 비행장 등을 건설하는 현장에 한국인을 동원하였다. [한국사의 창] 5-1. 일제가 침략 전쟁을 확대하다 중국 베이징 근교에는 루거우차오라는 다리가 있다. 1937년 7월, 이곳 근처에서 훈련하던 일본군을 향해 총성이 울렸다. 총을 쏜 사람이 일본군인지 중국군인지 알.. 2023. 6. 24.
[한국사의 창] 4-4. 대중문화가 유행하고 문예 활동을 전개하다 4-4. 대중문화가 유행하고 문예 활동을 전개하다 레코드는 소리를 기록하였다가 축음기에 올려서 재생하는 원반 형태의 음반으로, 국내에는 개항 이후 유입되었다. 이후 1920년대에 대중가요가 유행하고 축음기가 보급되면서 레코드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레코드를 축음기에 재생하면 공연장에 가지 않고도 음악을 들을 수 있어 레코드는 인기 있는 문화 상품 중의 하나였다. 연극과 영화 일제 강점기 연극에서는 일제의 탄압으로 판소리, 가면극 등 전통적인 공연이 위축되었고, 이수일과 심순애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장한몽」과 같은 신파극이 인기를 끌었다. 3·1 운동 이후에는 토월회가 민중 계몽을 주장하며 신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대에는 극예술 연구회가 만들어져 민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연극을 공연하였.. 202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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