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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역사 학술296

[한국사의 창] 5-1. 한강의 기적을 이루다 5. 경제 성장과 사회 문화의 변화 1990년대 이전에는 편지나 엽서가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다. 그 때문에 우편물에 붙이는 우표에는 당시 정부의 주요 정책과 사업을 홍보하는 내용이 담기기도 하였다. 특히 박정희 정부 시기에 발행한 우표를 살펴보면, 1960~1970년대 경제 성장의 모습을 알 수 있다. 5-1. 한강의 기적을 이루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신년사에서 ‘일하는 해’를 표어로 정하고, 경제 발전에 매진해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하였다. 이 시기 정부는 시책을 선전하고자 건전 가요를 만들어 보급하였는데, 일하는 해에 제작된 음반에는 「일하는 즐거움」이라는 노래와 악보가 수록되었다. 사실 정부는 1965년에도 ‘일하는 해’를 다짐하였었다. 1960년대는 그야말로 경제 성장에 집중한 시기였다. 경.. 2023. 6. 25.
[한국사의 창] 4-4.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다 4-4.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다 1980년 5, 18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지역에 근무했던 경찰관의 근무 일지에는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의 진행 양상과 경찰의 대응, 사용 물품, 부상자, 계엄군의 개입 등이 요일별, 시간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5월 18일 16시, 광주 한일은행 사거리에 ‘공수단 도착 진압’ 등의 메모는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신군부의 등장과 서울의 봄 10·26 사태 이후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통일 주체 국민 회의를 통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국민 사이에서는 유신 체제가 끝나고 민주 사회가 올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며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확산하였다. 그러나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 주도하는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 2023. 6. 25.
[한국사의 창] 4-3. 유신 체제가 성립하다 4-3. 유신 체제가 성립하다 1972년 전국에서 뽑힌 통일 주체 국민 회의 대의원 2,359명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대통령으로 단독 출마한 박정희 후보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하였다. 그 결과 찬성표는 2,357표였고, 2표는 기표에 실수한 무효표였다. 6년 뒤인 1978년 제2대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도 투표 2,578명 중 찬성 2,577표, 무효 1표로 99.9 %에 달하는 찬성표를 얻으면서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유신 체제의 성립 1969년 닉슨 독트린 발표 이후 냉전 체제가 완화되면서 국제적으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미국은 중국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한편,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주한 미군도 감축하였다. 이러한 국제 관계 변화는 반공을 강조하며 정권을 유지하던 박정희 정부에게 불.. 2023. 6. 25.
[한국사의 창] 4-2. 군사 정변으로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다 4-2. 군사 정변으로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다 1961년 국가 재건 최고 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는 미국을 방문하여 케네디와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박정희는 반공 정책과 미국과의 유대 관계 지속 의사를 밝히고,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제안하는 등 베트남전 참여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것은 주한 미군이 베트남으로 파견되는 것을 차단하고, 전쟁 특수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5·16 군사 정변 장면 정부 시기에 전개된 민간 차원의 통일 운동과 정부의 군비 축소 계획에 대해 일부 군인들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를 비롯한 일부 군인들이 장면 정부의 무능과 사회 혼란을 구실로 삼아 1961년 5월 16일에 정변을 일으켰다(5·16 군사 정변). 군사 .. 2023. 6. 25.
[한국사의 창] 4-1. 4·19 혁명이 일어나다 4. 4·19 혁명과 민주화를 위한 노력 4·19 혁명에 참여한 고등학생 이재영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들로 일기를 써 내려갔다. 일기에는 ‘민주주의가 사망하는 날’이라고 표현한 3·15 부정 선거부터 4월 18일 고려대 학생 시위, 4월 19일 경무대로의 진격 과정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4-1. 4·19 혁명이 일어나다 이승만 정부는 1960년에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에서 유례 없는 부정 선거를 벌였다. 투표소 안에서 표를 바꾸거나 개표 과정에서 투표용지를 바꿔치기하였고, 유권자의 표를 미리 기표해 두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총유권자의 수보다 투표자 수가 더 많이 나오자 공무원들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투표용지를 불태우는 일도 있었다. 4·19 혁명의 배경 1950년대 이승만 정부의 부정부패와 미.. 2023. 6. 25.
[한국사의 창] 3-2. 전후 독재 체제를 강화하다 3-2. 전후 독재 체제를 강화하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 보자.’, ‘갈지 못하면 살 수 없다.’ 등의 구호를 내세워 이승만 정부에 실망한 국민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자 자유당은 ‘갈아 봤자 더 못산다.’, ‘구관이 명관이다.’, ‘나라 위한 한평생 합심하여 또 모시자.’ 등의 구호를 내걸고 민주당에 맞대응하였다. 주제 반공주의와 독재 6·25 전쟁 이후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앞세워 정권 연장에 힘썼다. 전쟁 직전 치러진 제2대 국회 의원 선거1에서 이승만 정부에 비판적인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자, 이승만과 자유당은 대통령 간선제로는 다시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직선제 개헌을 시도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1952년 5월 부산 일대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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